• [기고] ⑤ ‘우경화’라는 게으른 프레임 너머, 청년들이 요구하는 투명한 삶의 조건
    • 비즈인천은 인천 지역 경제와 산업을 다루는 동시에 이 도시의 다음 세대가 어떤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과 함께 ‘청소년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논의를 차분히 짚어보는 월간 칼럼 연재를 시작합니다.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가 전하는 연재가 의미 있는 공론의 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비즈인천] 2026년 지방선거가 끝났다. 유권자들은 절묘한 결과로 현재의 정치권을 심판했다. 숫자로 바라보는 승리의 결과와 달리 핵심 지역에서의 이변, 기초지방정부 선거에서의 의외의 결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집중할 것이 바로 2~30대 청년들의 선택이다. 기존의 관성에 젖어 있는 기성 세대에게 그들의 선택은 실로 충격적이다.

      작년 대선 이후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가 끝나고 어김없이 나오는 말 역시 ‘2030 세대의 우경화’이다. 특히 20대 남성들의 선택을 두고, 기성세대는 공동체 의식이 붕괴됐다거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실과 현장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봐 온 필자의 눈에, 이 현상을 단순히 ‘보수화’라는 낡은 이념의 틀로 가두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지독히 게으른 오독(誤讀)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공감과 배려, 평등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화하며 자랐다. 부당한 일에는 논리적으로 항변할 줄 알고, 자신이 가치를 두는 곳에는 ‘돈쭐’을 내며 약자를 돕는 감각도 살아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정의’나 ‘연대’라는 가치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숭고한 단어들을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자녀의 입시 스펙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자산을 방어하는 데 몰두해 온 기성세대의 ‘위선’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 공정에 대한 집착, 그 이면에 숨은 고립감

      공정함과 투명함을 예의로 배우며 자란 청년들에게, 말과 행동이 다른 기성세대의 내로남불은 가장 견디기 힘든 반칙이다. 코스피 지수 9000을 넘어 1만 포인트를 바라보는 뜨거운 자산 시장과는 완전 반대로, 청년 고용시장은 더 얼어붙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며칠 전 발표한 고용동향은 전년 동기 25만 명 이상 감소하여 5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실업률과 불완전 취업 지표도 악화하면서 청년층은 자산시장과 고용시장에서 동시에 격차를 체감하고 있다. 체감 경제는 엉망이고 양질의 일자리는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각자도생의 정글 속에서, 청년들은 지독한 ‘제로섬(Zero-Sum)’ 게임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이 수능 점수나 할당제 폐지와 같은 극단적인 ‘기계적 공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타인에 대한 혐오 때문이 아니다. 내 삶의 하한선을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공포 속에서, 기성세대의 뭉툭하고 위선적인 개입이 불가능한 유일하고 투명한 잣대가 바로 ‘숫자’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고 발밑이 불안한 사람에게 타인을 향한 관용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들의 서늘한 분노는 결국 “나를 보호해 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절규의 다른 표현이다.

      도덕적 훈계를 멈추고 ‘삶의 조건’을 재배치할 때

      이러한 삶의 조건에서 “왜 연대하지 않느냐?”고 훈계하는 일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혐오와 분노를 멈추게 하는 것은 도덕 교과서의 가르침이 아니라, 내가 딛고 선 땅이 안전하다는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이다. 필자가 그동안 강조해 온 ‘기본 교육’의 철학이 바로 여기에 맞닿아 있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자원으로 관계의 위축을 막고(청소년 기본소득),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을 내어주며(주치의 제도), 공간의 제약을 허물어 도시를 누비게 하고(무상 대중교통), 끊임없는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권리(갭이어)를 보장하는 일. 이것은 단순한 시혜적 복지가 아니다.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환대’받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시키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사회적 투자라 할 것이다.

      투명성과 책임, 사회적 권리로 응답하는 시대

      청년들은 명징하다. 이들은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있어야만 움직인다. 세상을 ‘좌와 우’로 나누어 청년들을 분석하려는 우리들의 관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는 투명성과, 한 번 넘어지면 끝장나는 사회 구조를 바꿔낼 책임있는 행동이다.

      실질적인 삶의 조건들이 혜택이 아닌 ‘사회적 권리’로 보장될 때, 비로소 청년들은 기계적 공정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타인에게 눈길을 돌릴 것이다. 내 자리가 위태롭지 않고 내 삶의 하한선이 단단하게 지켜진다는 신뢰가 싹틀 때,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연대와 협력의 꽃도 다시 피어날 수 있다.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명확해지지 않는가? 아직도 낡은 틀로 세상을 해석하며 위선적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기성 세대의 변화, 우리 교육의 토대에서부터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것으로 응답해야 할 때이다.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現 인천송현초등학교 교사
      現 동구마을교육협의회 사무처장
      現 동구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現 서흥꿈세움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前 전교조인천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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