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➅ 혐오의 밈(Meme) 뒤에 숨은 고립감 – ‘기본 교육’ 없이는 혐오를 멈출 수 없다
    • 비즈인천은 인천 지역 경제와 산업을 다루는 동시에 이 도시의 다음 세대가 어떤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과 함께 ‘청소년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논의를 차분히 짚어보는 월간 칼럼 연재를 시작합니다.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가 전하는 연재가 의미 있는 공론의 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비즈인천] 얼마 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벌어진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응원 논란은 우리 사회에 아픈 충격을 주었다.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와 같은 구호를 외친 이 사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특정 지역을 겨냥한 명백한 혐오 표현이었다. 피해 학교의 선처로 징계가 감경되고 선수들이 광주를 찾아 사과했지만, 이어진 민주시민교육 시간에 많은 학생이 잠을 청했다는 씁쓸한 후문은 우리를 더 깊은 수심에 빠뜨린다. 교사 10명 중 9명이 교실 내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호소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왜 이토록 타인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롱하며 혐오의 언어를 밈(Meme)처럼 소비하게 되었을까?

      혐오가 놀이가 된 교실, 그 이면의 지독한 방기

      기성세대는 이러한 현상을 보며 ‘요즘 애들’의 도덕성과 민주시민교육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실 현장에서 관찰한 혐오의 본질은 거창한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지독한 ‘고립감’과 ‘공포’이다. 오직 성적과 스펙이라는 숫자로만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정글에서, 아이들은 “사회가 나를 돌보지 않으니, 나도 타인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는 서늘한 진리를 먼저 배운다. 내가 딛고 선 땅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는 불안과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외로움은 타자를 향한 공격성으로 치환된다.

      타인의 비극을 조롱하고 깎아내림으로서 또래 집단 안에서 얄팍한 승리감을 맛보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빈곤하고 내몰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명이다. 필자가 주창해 온 ‘기본 교육’의 시선으로 볼 때, 이 비극은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기본 조건들이 철저히 박탈당해 온 결과다.

      ‘돈, 몸, 길, 시간’의 부재가 가져온 영혼의 가뭄

      아이들이 혐오의 언어에 중독되는 과정은 기본 교육의 네 가지 기둥—돈, 몸, 길, 시간—의 부재와 직결되어 있다.

      첫째, ‘청소년 기본소득(돈)’의 부재다. 친구와 떡볶이 한 그릇 사 먹을 자원이 없어 관계에서 소외되고,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경험의 폭이 제한될 때, 아이들은 자존감을 잃는다. 당당하게 사회와 관계 맺을 자원을 쥐여주지 않은 채 교실에서 ‘우정’과 ‘연대’를 가르치는 것은 공허한 훈계일 뿐이다.

      둘째, ‘청소년 주치의(몸)’의 부재다. 마음의 병과 정서적 위기에 노출되어도 기댈 수 있는 어른 전문가가 없을 때, 아이들의 다친 내면은 곪아 터져 타인을 향한 가해 행동으로 드러난다.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위로받아 본 적 없는 아이는 남의 아픔에도 공감할 줄 모른다.

      셋째, ‘청소년 무상대중교통(길)’의 부재다. 공간적 이동권이 제약된 아이들은 스마트폰 속 어두운 인터넷 커뮤니티나 숏폼의 자극적인 밈 속에 갇히기 쉽다. 도시 전체를 누비며 실제 사람을 만나고, 오지의 현장과 역사의 숨결을 온몸으로 체험할 ‘길’이 막혔을 때, 아이들의 세계는 왜곡된 알고리즘의 좁은 감옥이 된다.

      마지막으로 ‘갭이어(시간)’의 부재다. 입시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단 한 번도 ‘시간의 주권’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형식적인 성찰이나 사과 강요는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한다. 스스로 내뱉은 말의 무게를 돌아보고,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성숙해질 ‘시간’을 빼앗겼기에 반성문 뒤에서 잠을 청하는 무감각이 발생하는 것이다.

      도덕적 훈계를 넘어, 삶의 조건을 재배치해야 할 때

      배재고 야구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문 몇 장이나 일회성 반성회 같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혐오를 치유하는 유일한 백신은 “사회가 너를 혼자 두지 않으며, 네 삶의 하한선은 우리가 지킨다”는 신뢰의 경험이다. 주머니 속의 기본소득으로 관계의 용기를 얻고(돈), 주치의를 통해 마음의 안전 기지를 확보하며(몸), 무료 버스를 타고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길), 갭이어를 통해 자기 삶을 온전히 돌아보는(시간) 경험. 이러한 기본 교육의 토대 위에서 자란 아이는 비로소 세상을 ‘나를 착취하는 곳’이 아닌 ‘나를 지탱해 주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내가 존중받아 본 기억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의 손에 '기본 교육'이라는 단단한 삶의 조건을 쥐여줄 때, 교실을 감돌던 서늘한 혐오의 언어는 비로소 타인을 향한 관용과 연대의 문법으로 바뀔 것이다.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아이들이 살아갈 '삶의 조건'부터 재배치하는 것, 그것이 혐오의 시대를 끝낼 진짜 교육의 출발점이다.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現 인천송현초등학교 교사
      現 동구마을교육협의회 사무처장
      現 동구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現 서흥꿈세움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前 전교조인천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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